[re] 불쌍한 우리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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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연채 댓글 0건 조회 4,492회 작성일 08-11-04 09:17본문
많이 기다리셨지요? 장문의 글만큼이나 님의 마음이 절실하실 것 같습니다.
님께서는 어머니의 가슴에 맺힌 한과 응어리를 풀어드렸으면 하는 목표를 가지고 상담을 신청하셨습니다. 님은 가족의 일로 상담을 신청하실 만큼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각별하신 것 같습니다. 님의 어머니께서는 어려움 중에도 그런 속 깊고 모범적인 맏아들인 님을 많이 의지하고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치유되어 좀 편안해지시면 님의 가정이 현재보다는 행복할 것 같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이 상담에서 님의 어머니를 도와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10대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와 살면서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 아마도 아버지란 존재의 중요함을 절절히 느끼셨을 것이고 아버지가 안 계셔서 어머니가 고생하고 희생한다는 생각도 할 수 있고 여자도 강해야 산다는 생각들을 했을 것입니다.
자라면서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안정감이 없고 외롭고 슬펐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생활고로 바쁜 엄마와는 그런 마음을 나누지 못하였을 것이고 만일 맏이였거나 남자형제들 사이에 있었다면 더더욱 마음을 나누는 것이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어린아이의 마음엔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고 함께 마음을 나누고 싶고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열망이 가득하고 결혼에 대한 환상을 키웠을 수 있습니다.
열망이 강한 만큼 남편에 대한 기대도 높았을 것입니다. 남편이 완벽하게 가정을 책임져주고 또 자신을 온전히 받아주고 사랑해주기를 바랐겠지요. 어머니는 놀이와 취미생활로 밖으로 도는 남편에게서 무얼 느꼈을까요? 어린아이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 버림받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불안하고 슬프고 자신이 불쌍해 보이고 삶이 버겁고 화도 나지요. 무책임해 보이는 남편에게 같은 감정들을 느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부부가 어떻게 친밀함을 나누고 사랑을 표현하는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하고 마음으로 연결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셨을 것이고 내면에서 올라오는 불안과 슬픔과 분노를 비난과 통제로 강렬하게 표현하신게지요.
이러한 어머니와 사셨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실까요? 님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마음의 사랑의 자리에 서서 아버지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가 어떤 분으로 느껴지십니까?
아버지는 여섯 형제 중 4째로, 가운데 끼인 자녀여서 관심과 사랑 보다는 소외되었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친할머니는 인색하셨다하니 사랑받고 싶은 열망을 채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아버지에게 정이 많고 적극적인 어머니의 모습이 끌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 속에서는 사랑 받기보다는 가장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강요받고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마음을 밖에서 시간을 보내시거나 취미활동을 하면서 해소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의 가장 핵심적인 감정은 외로움일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며 사셨을 텐데 아내 뿐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실수가 전혀 용납되지 않는 가족 집단 속에서 어느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수 없는 지독한 외로움 속에 계실 것 같습니다.
님의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누구의 목소리인가요?
님께서는 스스로 모범생의 역할을 하며 가정의 불안을 줄이고 이 가정이 유지되도록 애를 썼을 것입니다. 이런 노력을 하는 님의 눈에 아버지는 어떻게 비쳤을까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사랑과 친밀함을 표현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님께서도 아버지에 대한 어떤 환상이 있지는 않은가요?
이러한 얘기를 아버지와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어머니의 희생에 감사하고 그 내면의 마음을 만져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누나와 동생들을 바라보는 님의 눈은 따뜻할 뿐 아니라 전문가처럼 잘 이해하고 있으십니다. 님과 부모님이 서로 마음을 나누고 부모님들께서 서로 마음으로 연결된다면 그 혜택은 누나와 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갈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혼자 어려우시면 우선 님께서 먼저 상담을 받아보시고 연구소
(02-6377-6150)의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신다며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기업인 S전자 연구원으로 재직 중에 있는 임용택 이라고 합니다. 가족 문제로 고민이 커서 문의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
>저희 가족은 아래와 같습니다.
>
>아버지: 56세, 신발가게 운영
>어머니: 54세, 신발가게 운영,
>누나: 35세, 3년 전쯤 가출했음
>본인: 32세, S 전자 연구원 재직 중, 07년12월 결혼하여 분가하여 생활 중
>남동생: 22세, 강원도 전문대학교 재학 중
>여동생: 17세, 고등학교 재학 중
>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는 굉장히 일찍 만나서 같이 사셨습니다. 위에 나이 대를 보면 아시겠지만 저희 누나와 어머니가 19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걸 보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요즘으로 치면 고 2 시절에 남자를 만나 결혼도 하기 전에 아기를 낳고 산 것이죠. 그리고 두 분다 초등학교 까지만 나오셨어요.
>
>어머니는 10대 시절에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외할머니가 어머니 포함해서 4남매를 어렵게 아버지 없이 키우셨다고 해요. 아버지 없는 가정이 다들 비슷하듯, 저희 어머니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외할머니가 정이 많으신 분이라 그걸 닮아 저희 어머니도 정이 많으시지만, 고집이 무척 세시고 공감을 잘 하지 못하시는 주도적인 스타일이십니다.
>
>아버지는 6형제 중 4 번째로 태어나셨고, 인색한 친할머니 밑에서 컸기 때문에 역시 공감을 못하시는 부분이 있지만 맘 좋은 부분이 많아 친근한 놀기 좋아하는 스타일이십니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별로 없으세요. 많은 부분 본인의 에너지는 본인에게만 집중되어 있으신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공감을 잘 못하십니다. 누나가 가출한 이유가 본인한테 있는데, 골치거리 잘 나갔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남 생각은 못 합니다. 자기 자식한테도 이 정도이면 말을 다 한 겁니다.
>
>누나랑 제가 아직 어린 시절엔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잘 살기 위해서 두분 다 노력하시면서 사셨던 것 같아요. 원래 저희 아버지는 10대 시절부터 양복 재단 일을 배우셨고 제가 7살이 되기 까지 양복 일을 하셨어요. 그리고 그 당시엔 저희 가족 4명은 서울 마포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
>때마침 그때 경기도 안산에서 1981년쯤에 먼저 와서 가방 가게를 하시며 자리를 잡고 있으시던 외삼촌의 권유로 저희 가족도 서울 마포에서 안산으로 오게 되며, 아버지는 하시던 양복 일을 접으시고 외삼촌의 도움으로 가방 가게를 여시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신발 가게로 전업을 하고 많은 노력 끝에 1990년 쯤엔 저희 부모님은 신발 가게의 호황으로 많은 돈을 버실 수가 있어어요. 그러는 와중에 남동생과 여동생이 늦둥이들로 태어나고 현재까지 저희 부모님은 신발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십니다.
>
>이제 저희 가족의 불화를 말씀 드려 보자면 저희 어머니와 아버지는 젊었을 때부터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싸우시면서 살았습니다. 싸움의 원인은 아버지가 노시는 걸 너무 좋아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술 드시는 것을 너무 좋아하셨고(알코올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일을 하지 않고 술을 드시고 올 때마다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점을 아버지에게 매우 강력하게 따지곤 하셨습니다.
>
>그러다 80년대 후반 쯤부터 아버지는 바둑에 취미를 붙이시게 되었고 거의 바둑 중독 수준이 되셨어요. 문제는 가게를 운영하는 도중에 종업원에게 일을 맡겨 놓고 하루 종일 바둑을 두고 오신다거나 하는 식으로 자기 절제를 못 하시면서 부터였습니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 정신 못차리고 바둑만을 두러 일안하고 매일 사라지고 없으니, 어머니 입장에서는 이게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고, 두 분은 이 바둑 문제로 거의 10년간을 격렬하게 싸우시게 됩니다.
>
>아버지가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하며 바둑이라는 것에 중독이 되신 것,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와의 전쟁과도 같은 대립으로 인해 집안은 항상 폭풍전야와도 같았습니다. 너무도 많이 싸우셨습니다. 성격이 매우 와일드하신 어머니라서 싸우는 것도 거의 격투기 수준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싸움의 강도와 정도가 극단으로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어머니 입장에선 아버지가 가족의 가장이니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고 가족을 돌보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남자의 취미 생활까지 너무 일일이 간섭한다며 본인에게는 자유도 없냐 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서로 간에 10여 년간 팽팽한 접전을 벌이십니다. 문제가 한 참 절정에 와 있을 때엔 두 분다 젊은 30대인지라 말싸움에서 시작하여 서로 간에 몸으로 한 판 붙는 유혈 사태를 봐야 싸움이 끝나곤 했습니다. 너무 한탄스러운 마음에 소주 3병을 한꺼번에 드시고 자학하시며 새벽녘에 오열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
>아버지는 그래도 자신의 유흥을 포기하고 싶지가 않으셨습니다. 2000년 들어 인터넷 바둑의 보급으로 아예 가게에다 컴퓨터를 갖다 놓고 바둑을 두시게 되어, 바둑으로 인한 분쟁은 조금씩 잦아들게 되었습니다만, 그러던 와중 아버지는 어머니와 사는 것이 낙이 없다고 하시며 산악회에 가입하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거기서 한 유부녀를 만나게 되었고, 그 여자와 외도를 하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그 여자와 통화하는 걸 저희 누나가 엿듣게 되었던 겁니다. 대단히 낯 뜨거운 대화를 집 안에서 새벽에 몰래 하는 아버지를 목격한 저희 누나에겐 그건 너무 큰 충격이었고, 저희 어머니에게도 엄청나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 때가 2001년 여름 쯤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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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본인의 자기 절제 문제지만, 외도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였었고, 충격도 너무나 컸기에 저희 어머니와 누나, 두 모녀는 아버지를 쥐 잡듯이 잡아버리게 됩니다. 옛날부터 원인 제공은 사실 아버지였기에 항상 잘못한 것이 많다고 생각하시는 아버지인지라, 또 이번 경우엔 어떻게 변명할 거리도 없이 현장에서 들켜버린 것이라 제대로 대항도 못하시고 어머니에게 개 패듯이 맞고 누나에게도 인간 최저의 모욕을 당하시게 됩니다. 한 마디로 집안 꼴이 초전박살,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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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처음으로 이혼 얘기가 구체적으로 나왔었습니다. 전에도 이혼 얘기가 안 나왔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경우엔 정말 심각했었습니다. 한 동안의 폭풍 같던 시간이 끝나고(어머니는 아버지가 외도하려던 여자에게 전화를 걸고 그 남편에게도 전화를 걸어 서로 경찰서까지 가서 따귀를 올려 붙이고 하는 등, 정말 장난 아니었습니다) 전 어머니에게 아버지와 이혼하시는게 좋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보다 따로 사는 것이 낫다는 것을 말씀드렸지요. 어머니는 몇 일 깊게 생각하시더니 아버지를 그대로 놔두시기로 하셨습니다. 나이가 50줄에 가까운 사람을 집에서 쫒아내는 것이 불쌍하셨고, 아직 중학생, 초등학생 동생들을 생각해서도 아버지 없는 가정을 만들기에는 자녀들에게 너무 미안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그 사건은 지나가게 되었지만 저희 어머니와 누나에겐 가슴에 너무 큰 상처는 그대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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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아버지는 설 자리를 잃게 되고 자신감을 상실하시게 됩니다. 가게에 매일 출근하시지만 어머니는 아버지를 집 안의 가장이 아닌 머슴처럼 생각하셨습니다. 가족의 경제적 부양을 위해 가게를 운영하는 종업원 처럼 대하신 것이죠. 그러다 아버지가 새롭게 찾은 낙은 외삼촌과 외숙모가 운영하는 조끼조끼(맥주 전문점)에 가서 외숙모와 술 한잔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입장에선 대화할 만한 상대가 없었기에, 자꾸 가정을 벗어나려 한 것이고, 마침 외숙모도 친근하고 재미있는 저희 아버지와 죽이 잘 맞아 같이 노셨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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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희 아버지와 외숙모가 문자를 친한 연인처럼 주고 받는 걸, 우연찮게 제 막내 여동생(당시 초등학생)에게 들켜 버립니다. 제 여동생은 이걸 어머니이게 알렸고, 한 번의 전과가 있던 아버지는 또 다시 정말 개 패듯이 맞게 됩니다. 이 때엔 외숙모도 저희 집에 끌려와 역시 개 패듯이 저희 어머니가 구타를 했습니다. 당시에 전 현장에 뒤 늦게 갔었는데 온 집안에 진동하는 피 냄새는 어머니가 외숙모를 얼굴을 여자 구두 뒤축으로 찍었던 것이 원인이더군요. 나중에 외삼촌과 외숙모는 안산을 떠나 동두천으로 이사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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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에도 이혼 여부가 다시 크게 부각되었지만 아버지 없는 가정을 만들기 싫었던 어머니의 한번 참음으로 또 엉망진창이 된 가정을 이어가게 됩니다. 어찌 되었건 저희 집안 만이 아니라 외삼촌 가정까지 엉망이 된 안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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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년이 넘게 싸우셨던 세월은 부모님을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으로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본연의 애정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십니다. 자녀들에 대한 사랑으로 버텨오셨지만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 있으십니다. 아버지는 너무도 많이 혼나셔서(?) 자아존중감이 바닥이십니다. 본인을 중요하게 생각지도 않고, 나는 있으나 마나 그럭저럭 사는 존재로 생각하십니다. 가능한 이젠 어머니와 트러블을 만들려고 하시지 않으시고 무슨 문제가 있으면 무조건 져주시게 되었습니다. 싸움에서는 어머니가 이긴 듯합니다. 진짜 승리자는 아무도 없겠지만…
>
>지금까지 부모님이 받으신 피해만 이야기 했지만, 정작 죄 없는 불쌍한 사람들은 저희 4 남매입니다. 우리 4 남매 중에 저희 누나가 사실은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입니다. 우리들 중에 가장 먼저 태어나 어머니, 아버지의 싸움을 거의 25년간 생생하게 목격하고 자라났습니다. 조용조용하게 말다툼을 하더라도 아이 입장에선 그처럼 무서운 게 없는데, 과격한 유혈사태와 머리털이 뽑힐 정도로 가야 끝장을 보는 부모님의 싸움은 저희 누나를 정말 정서적으로 유약하고 삐뚤어진 성격을 형성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이성을 잃어 버릴 정도로 증오감에 휩싸인 어머니가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와 아버지를 찌르신 적도 있습니다. 다행히 베이는 정도로 끝났지만, 그 당시 어머니는 악마와도 같았습니다. 아버지도 자기가 칼에 찔릴 줄은 상상 못하셨을 겁니다.
>이런 것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라났으니 누나가 제대로 된 성격을 형성할 리가 없습니다. 부모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이란 걸 잘 모르고 자라나서 한 마디로 삐뚤어진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유달리 인정욕구가 강한 저희 누나는 우수한 머리를 가지고 있어서 중학교 때 항상 반에서 1등을 했었지만, 대학교를 보내지 않은 어머니의 결정에 의해 고등학교 졸업 후 방황하게 됩니다. 남한테 인정을 받아야만 행복해하고 그것이 자존감의 원천으로 삼았던 누나의 약점은 외모 콤플렉스였습니다. 저희 누나는 뚱뚱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은 김태희나 이효리 같이 되어야 한다는 잘못된 자아관을 가진 지라, 10년 이상을 다이어트에 몰입하게 됩니다.
>지나치게 낮은 자기 제어력은 한 때 전화비가 30만원 넘게 몇 달 연속으로 고지되어도 통신 채팅을 못 끊게 만든 적도 있고, 방만한 생활 태도로 인해 항상 저희 어머니와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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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어머니가 자녀의 문제를 공격하고 비난하기 보다는 감정을 읽어 주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면 저희 누나가 3년 전에 가출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정상에 가까운 이성을 가지고 있었던 누나이지만 아버지의 비도덕성, 어머니의 계속된 비난과 채근에 결국 집을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받았던 피해는 자기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대물림 되고 전파됩니다. 그것이 슬픈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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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누나가 제 남동생에게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초까지 학습관리를 해주었습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자신이 가게 운영으로 바쁘니까 남동생 학습관리를 누나에게 돈을 주어 관리하게끔 한 것입니다. 누나 입장에서도 별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없고 돈을 받을 수도 있고 하니 남동생을 맡아 공부 관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
>여기까지는 들으면 나쁠 것이 없어 보이지만, 누나가 제 남동생을 맡게 된 것은 정말 크나큰 실수였습니다. 저희 누나는 제 남동생이 공부를 잘 못하거나 말을 안 들으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혼내지 않았습니다. 저희 집이 아파트 14층이었는데, 제 남동생을 베란다로 끌고 가서 난간에 반쯤 걸치게 해서 ‘너 같이 말 안 듣는 애는 떨어져 죽어야 한다’며 죽음의 공포를 10살짜리 꼬마 남자애가 경험하게 해 주었고, 욕실에 물을 가득 받아 놓고 죽으라며 남동생의 머리를 물에 쳐 넣으며 역시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또 한 번은 먹을 걸 유난히 좋아했던 남동생이 숙제를 안 해놓고 쵸코파이를 먹고 있는 것을 발견한 누나가 쵸코파이 5~6개를 한꺼번에 까서 동생 입에 쳐 넣으며 ‘너같이 공부 못하는 건 나중에 강호동처럼 되서 개그맨이나 되라’며 꾸역꾸역 입에 쵸코파이들을 쑤셔 넣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이 생각만 하면 제 남동생이 불쌍해져서 울컥해집니다. 눈물을 흘리며 쵸코파이 5~6개를 입 안에 가득 쳐 넣은 3학년 꼬마애를 생각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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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22 세인 제 남동생은 자아존중감이 바닥인 채 살고 있고, 대인관계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 사건이 자기 인생에서는 너무 큰 충격이었다고 말을 하곤 합니다. 누나는 자기가 부모님에게 받은 피해를 고스란히 남동생에게 가해자로 전달해주었던 겁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 들 중에 정말 일부만을 언급했을 뿐인데도 벌써 5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
>전 저의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정과 사랑을 압니다.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신 분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이십니다. 아버지는 아마 자신이 살기 위해 도망갈 것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가슴에 큰 상처와 응어리를 수 십 년간 간직하고 사시다 보니 행복한 인생을 여지껏 사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런 걸 보면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평생 자녀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참으면서 아버지를 참으며 살아오셨습니다.
>
>하지만 어머니가 우리 자녀들에게 주신 피해가 너무 큽니다. 본인은 모르고 계시지만 우리 4 남매가 가지고 있는 정서적 불안함은 모두 어머니에게서 나온 것인데, 제가 이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했다가 저와 대판 크게 싸웠었습니다. 자신은 최선을 다해 자녀들을 입히고 잘 키우려고 노력했는데 어줍잖게 배운 지식으로 부모를 비판하려 한다며 1시간 동안 어머니의 비난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진실을 말해도 어머니는 들을 여력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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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바라는 것은 저희 어머니가 지금이라도 도움을 받아 가슴에 맺힌 한과 응어리를 풀기라도 하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공부해서 어머니를 아무리 설득해도 어머니는 듣지 않으십니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인 어머니의 마음이 어느 정도 치유만 될 수 있다면 저희 가족은 현재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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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게시물은 사티어님에 의해 2011-04-27 13:58:56 공개상담에서 복사 됨]
[이 게시물은 사티어님에 의해 2011-04-27 14:03:07 전체상담에서 이동 됨]
님께서는 어머니의 가슴에 맺힌 한과 응어리를 풀어드렸으면 하는 목표를 가지고 상담을 신청하셨습니다. 님은 가족의 일로 상담을 신청하실 만큼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이 각별하신 것 같습니다. 님의 어머니께서는 어려움 중에도 그런 속 깊고 모범적인 맏아들인 님을 많이 의지하고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했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이 치유되어 좀 편안해지시면 님의 가정이 현재보다는 행복할 것 같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이 상담에서 님의 어머니를 도와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10대에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와 살면서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 아마도 아버지란 존재의 중요함을 절절히 느끼셨을 것이고 아버지가 안 계셔서 어머니가 고생하고 희생한다는 생각도 할 수 있고 여자도 강해야 산다는 생각들을 했을 것입니다.
자라면서 어머니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안정감이 없고 외롭고 슬펐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생활고로 바쁜 엄마와는 그런 마음을 나누지 못하였을 것이고 만일 맏이였거나 남자형제들 사이에 있었다면 더더욱 마음을 나누는 것이 어려웠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어린아이의 마음엔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고 함께 마음을 나누고 싶고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은 열망이 가득하고 결혼에 대한 환상을 키웠을 수 있습니다.
열망이 강한 만큼 남편에 대한 기대도 높았을 것입니다. 남편이 완벽하게 가정을 책임져주고 또 자신을 온전히 받아주고 사랑해주기를 바랐겠지요. 어머니는 놀이와 취미생활로 밖으로 도는 남편에게서 무얼 느꼈을까요? 어린아이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 버림받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불안하고 슬프고 자신이 불쌍해 보이고 삶이 버겁고 화도 나지요. 무책임해 보이는 남편에게 같은 감정들을 느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부부가 어떻게 친밀함을 나누고 사랑을 표현하는지, 어떻게 갈등을 해결하고 마음으로 연결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하셨을 것이고 내면에서 올라오는 불안과 슬픔과 분노를 비난과 통제로 강렬하게 표현하신게지요.
이러한 어머니와 사셨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실까요? 님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마음의 사랑의 자리에 서서 아버지를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가 어떤 분으로 느껴지십니까?
아버지는 여섯 형제 중 4째로, 가운데 끼인 자녀여서 관심과 사랑 보다는 소외되었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친할머니는 인색하셨다하니 사랑받고 싶은 열망을 채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아버지에게 정이 많고 적극적인 어머니의 모습이 끌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 생활 속에서는 사랑 받기보다는 가장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강요받고 비난을 받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마음을 밖에서 시간을 보내시거나 취미활동을 하면서 해소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버지의 마음의 가장 핵심적인 감정은 외로움일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하며 사셨을 텐데 아내 뿐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실수가 전혀 용납되지 않는 가족 집단 속에서 어느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수 없는 지독한 외로움 속에 계실 것 같습니다.
님의 아버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는 누구의 목소리인가요?
님께서는 스스로 모범생의 역할을 하며 가정의 불안을 줄이고 이 가정이 유지되도록 애를 썼을 것입니다. 이런 노력을 하는 님의 눈에 아버지는 어떻게 비쳤을까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사랑과 친밀함을 표현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님께서도 아버지에 대한 어떤 환상이 있지는 않은가요?
이러한 얘기를 아버지와 나눌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어머니의 희생에 감사하고 그 내면의 마음을 만져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누나와 동생들을 바라보는 님의 눈은 따뜻할 뿐 아니라 전문가처럼 잘 이해하고 있으십니다. 님과 부모님이 서로 마음을 나누고 부모님들께서 서로 마음으로 연결된다면 그 혜택은 누나와 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갈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혼자 어려우시면 우선 님께서 먼저 상담을 받아보시고 연구소
(02-6377-6150)의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신다며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기업인 S전자 연구원으로 재직 중에 있는 임용택 이라고 합니다. 가족 문제로 고민이 커서 문의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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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족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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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56세, 신발가게 운영
>어머니: 54세, 신발가게 운영,
>누나: 35세, 3년 전쯤 가출했음
>본인: 32세, S 전자 연구원 재직 중, 07년12월 결혼하여 분가하여 생활 중
>남동생: 22세, 강원도 전문대학교 재학 중
>여동생: 17세, 고등학교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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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아버지와 어머니는 굉장히 일찍 만나서 같이 사셨습니다. 위에 나이 대를 보면 아시겠지만 저희 누나와 어머니가 19살 차이 밖에 나지 않는 걸 보면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요즘으로 치면 고 2 시절에 남자를 만나 결혼도 하기 전에 아기를 낳고 산 것이죠. 그리고 두 분다 초등학교 까지만 나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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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10대 시절에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외할머니가 어머니 포함해서 4남매를 어렵게 아버지 없이 키우셨다고 해요. 아버지 없는 가정이 다들 비슷하듯, 저희 어머니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외할머니가 정이 많으신 분이라 그걸 닮아 저희 어머니도 정이 많으시지만, 고집이 무척 세시고 공감을 잘 하지 못하시는 주도적인 스타일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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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6형제 중 4 번째로 태어나셨고, 인색한 친할머니 밑에서 컸기 때문에 역시 공감을 못하시는 부분이 있지만 맘 좋은 부분이 많아 친근한 놀기 좋아하는 스타일이십니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별로 없으세요. 많은 부분 본인의 에너지는 본인에게만 집중되어 있으신 스타일입니다. 그래서 공감을 잘 못하십니다. 누나가 가출한 이유가 본인한테 있는데, 골치거리 잘 나갔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남 생각은 못 합니다. 자기 자식한테도 이 정도이면 말을 다 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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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랑 제가 아직 어린 시절엔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잘 살기 위해서 두분 다 노력하시면서 사셨던 것 같아요. 원래 저희 아버지는 10대 시절부터 양복 재단 일을 배우셨고 제가 7살이 되기 까지 양복 일을 하셨어요. 그리고 그 당시엔 저희 가족 4명은 서울 마포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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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그때 경기도 안산에서 1981년쯤에 먼저 와서 가방 가게를 하시며 자리를 잡고 있으시던 외삼촌의 권유로 저희 가족도 서울 마포에서 안산으로 오게 되며, 아버지는 하시던 양복 일을 접으시고 외삼촌의 도움으로 가방 가게를 여시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신발 가게로 전업을 하고 많은 노력 끝에 1990년 쯤엔 저희 부모님은 신발 가게의 호황으로 많은 돈을 버실 수가 있어어요. 그러는 와중에 남동생과 여동생이 늦둥이들로 태어나고 현재까지 저희 부모님은 신발 가게를 운영하고 있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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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저희 가족의 불화를 말씀 드려 보자면 저희 어머니와 아버지는 젊었을 때부터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싸우시면서 살았습니다. 싸움의 원인은 아버지가 노시는 걸 너무 좋아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술 드시는 것을 너무 좋아하셨고(알코올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일을 하지 않고 술을 드시고 올 때마다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점을 아버지에게 매우 강력하게 따지곤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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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80년대 후반 쯤부터 아버지는 바둑에 취미를 붙이시게 되었고 거의 바둑 중독 수준이 되셨어요. 문제는 가게를 운영하는 도중에 종업원에게 일을 맡겨 놓고 하루 종일 바둑을 두고 오신다거나 하는 식으로 자기 절제를 못 하시면서 부터였습니다.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이 정신 못차리고 바둑만을 두러 일안하고 매일 사라지고 없으니, 어머니 입장에서는 이게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고, 두 분은 이 바둑 문제로 거의 10년간을 격렬하게 싸우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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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하며 바둑이라는 것에 중독이 되신 것,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와의 전쟁과도 같은 대립으로 인해 집안은 항상 폭풍전야와도 같았습니다. 너무도 많이 싸우셨습니다. 성격이 매우 와일드하신 어머니라서 싸우는 것도 거의 격투기 수준이 될 때가 많았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싸움의 강도와 정도가 극단으로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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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입장에선 아버지가 가족의 가장이니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고 가족을 돌보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남자의 취미 생활까지 너무 일일이 간섭한다며 본인에게는 자유도 없냐 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서로 간에 10여 년간 팽팽한 접전을 벌이십니다. 문제가 한 참 절정에 와 있을 때엔 두 분다 젊은 30대인지라 말싸움에서 시작하여 서로 간에 몸으로 한 판 붙는 유혈 사태를 봐야 싸움이 끝나곤 했습니다. 너무 한탄스러운 마음에 소주 3병을 한꺼번에 드시고 자학하시며 새벽녘에 오열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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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그래도 자신의 유흥을 포기하고 싶지가 않으셨습니다. 2000년 들어 인터넷 바둑의 보급으로 아예 가게에다 컴퓨터를 갖다 놓고 바둑을 두시게 되어, 바둑으로 인한 분쟁은 조금씩 잦아들게 되었습니다만, 그러던 와중 아버지는 어머니와 사는 것이 낙이 없다고 하시며 산악회에 가입하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거기서 한 유부녀를 만나게 되었고, 그 여자와 외도를 하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그 여자와 통화하는 걸 저희 누나가 엿듣게 되었던 겁니다. 대단히 낯 뜨거운 대화를 집 안에서 새벽에 몰래 하는 아버지를 목격한 저희 누나에겐 그건 너무 큰 충격이었고, 저희 어머니에게도 엄청나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 때가 2001년 여름 쯤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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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은 본인의 자기 절제 문제지만, 외도는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였었고, 충격도 너무나 컸기에 저희 어머니와 누나, 두 모녀는 아버지를 쥐 잡듯이 잡아버리게 됩니다. 옛날부터 원인 제공은 사실 아버지였기에 항상 잘못한 것이 많다고 생각하시는 아버지인지라, 또 이번 경우엔 어떻게 변명할 거리도 없이 현장에서 들켜버린 것이라 제대로 대항도 못하시고 어머니에게 개 패듯이 맞고 누나에게도 인간 최저의 모욕을 당하시게 됩니다. 한 마디로 집안 꼴이 초전박살,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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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처음으로 이혼 얘기가 구체적으로 나왔었습니다. 전에도 이혼 얘기가 안 나왔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경우엔 정말 심각했었습니다. 한 동안의 폭풍 같던 시간이 끝나고(어머니는 아버지가 외도하려던 여자에게 전화를 걸고 그 남편에게도 전화를 걸어 서로 경찰서까지 가서 따귀를 올려 붙이고 하는 등, 정말 장난 아니었습니다) 전 어머니에게 아버지와 이혼하시는게 좋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보다 따로 사는 것이 낫다는 것을 말씀드렸지요. 어머니는 몇 일 깊게 생각하시더니 아버지를 그대로 놔두시기로 하셨습니다. 나이가 50줄에 가까운 사람을 집에서 쫒아내는 것이 불쌍하셨고, 아직 중학생, 초등학생 동생들을 생각해서도 아버지 없는 가정을 만들기에는 자녀들에게 너무 미안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그 사건은 지나가게 되었지만 저희 어머니와 누나에겐 가슴에 너무 큰 상처는 그대로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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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아버지는 설 자리를 잃게 되고 자신감을 상실하시게 됩니다. 가게에 매일 출근하시지만 어머니는 아버지를 집 안의 가장이 아닌 머슴처럼 생각하셨습니다. 가족의 경제적 부양을 위해 가게를 운영하는 종업원 처럼 대하신 것이죠. 그러다 아버지가 새롭게 찾은 낙은 외삼촌과 외숙모가 운영하는 조끼조끼(맥주 전문점)에 가서 외숙모와 술 한잔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입장에선 대화할 만한 상대가 없었기에, 자꾸 가정을 벗어나려 한 것이고, 마침 외숙모도 친근하고 재미있는 저희 아버지와 죽이 잘 맞아 같이 노셨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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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희 아버지와 외숙모가 문자를 친한 연인처럼 주고 받는 걸, 우연찮게 제 막내 여동생(당시 초등학생)에게 들켜 버립니다. 제 여동생은 이걸 어머니이게 알렸고, 한 번의 전과가 있던 아버지는 또 다시 정말 개 패듯이 맞게 됩니다. 이 때엔 외숙모도 저희 집에 끌려와 역시 개 패듯이 저희 어머니가 구타를 했습니다. 당시에 전 현장에 뒤 늦게 갔었는데 온 집안에 진동하는 피 냄새는 어머니가 외숙모를 얼굴을 여자 구두 뒤축으로 찍었던 것이 원인이더군요. 나중에 외삼촌과 외숙모는 안산을 떠나 동두천으로 이사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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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에도 이혼 여부가 다시 크게 부각되었지만 아버지 없는 가정을 만들기 싫었던 어머니의 한번 참음으로 또 엉망진창이 된 가정을 이어가게 됩니다. 어찌 되었건 저희 집안 만이 아니라 외삼촌 가정까지 엉망이 된 안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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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년이 넘게 싸우셨던 세월은 부모님을 바람직하지 않은 모습으로 변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본연의 애정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십니다. 자녀들에 대한 사랑으로 버텨오셨지만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 있으십니다. 아버지는 너무도 많이 혼나셔서(?) 자아존중감이 바닥이십니다. 본인을 중요하게 생각지도 않고, 나는 있으나 마나 그럭저럭 사는 존재로 생각하십니다. 가능한 이젠 어머니와 트러블을 만들려고 하시지 않으시고 무슨 문제가 있으면 무조건 져주시게 되었습니다. 싸움에서는 어머니가 이긴 듯합니다. 진짜 승리자는 아무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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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부모님이 받으신 피해만 이야기 했지만, 정작 죄 없는 불쌍한 사람들은 저희 4 남매입니다. 우리 4 남매 중에 저희 누나가 사실은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입니다. 우리들 중에 가장 먼저 태어나 어머니, 아버지의 싸움을 거의 25년간 생생하게 목격하고 자라났습니다. 조용조용하게 말다툼을 하더라도 아이 입장에선 그처럼 무서운 게 없는데, 과격한 유혈사태와 머리털이 뽑힐 정도로 가야 끝장을 보는 부모님의 싸움은 저희 누나를 정말 정서적으로 유약하고 삐뚤어진 성격을 형성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이성을 잃어 버릴 정도로 증오감에 휩싸인 어머니가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와 아버지를 찌르신 적도 있습니다. 다행히 베이는 정도로 끝났지만, 그 당시 어머니는 악마와도 같았습니다. 아버지도 자기가 칼에 찔릴 줄은 상상 못하셨을 겁니다.
>이런 것을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라났으니 누나가 제대로 된 성격을 형성할 리가 없습니다. 부모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사랑이란 걸 잘 모르고 자라나서 한 마디로 삐뚤어진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유달리 인정욕구가 강한 저희 누나는 우수한 머리를 가지고 있어서 중학교 때 항상 반에서 1등을 했었지만, 대학교를 보내지 않은 어머니의 결정에 의해 고등학교 졸업 후 방황하게 됩니다. 남한테 인정을 받아야만 행복해하고 그것이 자존감의 원천으로 삼았던 누나의 약점은 외모 콤플렉스였습니다. 저희 누나는 뚱뚱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는데 자신은 김태희나 이효리 같이 되어야 한다는 잘못된 자아관을 가진 지라, 10년 이상을 다이어트에 몰입하게 됩니다.
>지나치게 낮은 자기 제어력은 한 때 전화비가 30만원 넘게 몇 달 연속으로 고지되어도 통신 채팅을 못 끊게 만든 적도 있고, 방만한 생활 태도로 인해 항상 저희 어머니와 갈등의 연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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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어머니가 자녀의 문제를 공격하고 비난하기 보다는 감정을 읽어 주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면 저희 누나가 3년 전에 가출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정상에 가까운 이성을 가지고 있었던 누나이지만 아버지의 비도덕성, 어머니의 계속된 비난과 채근에 결국 집을 나가게 됩니다. 하지만 자신이 받았던 피해는 자기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 대물림 되고 전파됩니다. 그것이 슬픈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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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누나가 제 남동생에게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초까지 학습관리를 해주었습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자신이 가게 운영으로 바쁘니까 남동생 학습관리를 누나에게 돈을 주어 관리하게끔 한 것입니다. 누나 입장에서도 별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없고 돈을 받을 수도 있고 하니 남동생을 맡아 공부 관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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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들으면 나쁠 것이 없어 보이지만, 누나가 제 남동생을 맡게 된 것은 정말 크나큰 실수였습니다. 저희 누나는 제 남동생이 공부를 잘 못하거나 말을 안 들으면 정상적인 방법으로 혼내지 않았습니다. 저희 집이 아파트 14층이었는데, 제 남동생을 베란다로 끌고 가서 난간에 반쯤 걸치게 해서 ‘너 같이 말 안 듣는 애는 떨어져 죽어야 한다’며 죽음의 공포를 10살짜리 꼬마 남자애가 경험하게 해 주었고, 욕실에 물을 가득 받아 놓고 죽으라며 남동생의 머리를 물에 쳐 넣으며 역시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또 한 번은 먹을 걸 유난히 좋아했던 남동생이 숙제를 안 해놓고 쵸코파이를 먹고 있는 것을 발견한 누나가 쵸코파이 5~6개를 한꺼번에 까서 동생 입에 쳐 넣으며 ‘너같이 공부 못하는 건 나중에 강호동처럼 되서 개그맨이나 되라’며 꾸역꾸역 입에 쵸코파이들을 쑤셔 넣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도 이 생각만 하면 제 남동생이 불쌍해져서 울컥해집니다. 눈물을 흘리며 쵸코파이 5~6개를 입 안에 가득 쳐 넣은 3학년 꼬마애를 생각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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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22 세인 제 남동생은 자아존중감이 바닥인 채 살고 있고, 대인관계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 사건이 자기 인생에서는 너무 큰 충격이었다고 말을 하곤 합니다. 누나는 자기가 부모님에게 받은 피해를 고스란히 남동생에게 가해자로 전달해주었던 겁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 들 중에 정말 일부만을 언급했을 뿐인데도 벌써 5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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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저의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정과 사랑을 압니다.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신 분은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이십니다. 아버지는 아마 자신이 살기 위해 도망갈 것입니다. 하지만 본인이 가슴에 큰 상처와 응어리를 수 십 년간 간직하고 사시다 보니 행복한 인생을 여지껏 사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런 걸 보면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평생 자녀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참으면서 아버지를 참으며 살아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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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어머니가 우리 자녀들에게 주신 피해가 너무 큽니다. 본인은 모르고 계시지만 우리 4 남매가 가지고 있는 정서적 불안함은 모두 어머니에게서 나온 것인데, 제가 이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했다가 저와 대판 크게 싸웠었습니다. 자신은 최선을 다해 자녀들을 입히고 잘 키우려고 노력했는데 어줍잖게 배운 지식으로 부모를 비판하려 한다며 1시간 동안 어머니의 비난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진실을 말해도 어머니는 들을 여력이 없으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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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바라는 것은 저희 어머니가 지금이라도 도움을 받아 가슴에 맺힌 한과 응어리를 풀기라도 하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공부해서 어머니를 아무리 설득해도 어머니는 듣지 않으십니다.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인 어머니의 마음이 어느 정도 치유만 될 수 있다면 저희 가족은 현재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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