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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와 아내는 변할 수 있을 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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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dongyi 댓글 0건 조회 4,637회 작성일 02-11-0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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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33세이고 아내는 한 살 연상입니다. 저희 부부는 결혼 한지 2년이 조금 넘었습니다. 그리고 10개월된 아들이 한 명 있습니다. <br />
 저희는 결혼하는 날 부터 싸워서 신혼 여행지인 태국에가서도 저의 온몸이 손톱 자국이 깊게 났습니다. 이유는 같이 광<br />
광온 여자들을 처다본다는 이유였습니다. 2년이라는 새월동안 즐거워던일 보다는 괴롭고 참고 견딘일로 가득차 있습니다. <br />
물론 우리를 서로 불완전한 사람들입니다. 서로거 서로의 불와전한 성격을 잘알고 있지만 잘 고쳐질지 않을 것이라는 것<br />
고 알고있습니다. 이제 더이상 성격 차이로 힘들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아내와 저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br />
다. 그리고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자 합니다.<br />
 저의 이야기<br />
 저는 2남 2녀 중 위로는 누님 한 분과 아래로는 남동생과 여동생이 한 명씩 있습비니다. 할아버지께서는 농사를 지어시<br />
면서 4남 2녀를 두셨는데 맏이가 저의 아버지이십니다. 어머님은 얼굴도 보지 못하고 중매를 통해 결혼하셨고 대가족의 <br />
힘든 시집살이를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술을 좋아하셨고 어머니와 우리 남매들은 아버지의 술주정과 폭행에 무서워 떨<br />
면서 지냈습니다. 그나마 이처럼 무사히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자희 4남매를 바라보시며 참고 살고 계시는 어머니니의 <br />
헌신적인 사랑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지금도 60이 되신 중풍이 약간 왔던 아버지가 어머니께 심한 욕설과 복행을 하실 때<br />
면 아버지도 불상하고 어머니는 더욱 불상하게 여겨집니다. 저희 부모님의 다툼은 거의가 돈문제였고 아버지의 영향으로 <br />
술과 담배는 험오하였고 지금도 입에 대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춘기 때의 그 스트레스를 저는 옥상위에서 남몰래 <br />
건너편 옥실을 훔처보는 거나 자위를하난것으로 해소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아니면 그 또래의 정산적인 호기심이였던<br />
거요. 문제는 지금도 저는 심심할 때면 인터넷에서 포르노사이트를 보는 습관(욕구)이 생겼습니다. 물론 일상 생활에 장<br />
애가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이것은 아내에게 큰 충격이였고 저를 믿지 못하는 불신을 만드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br />
지금은 이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br />
<br />
 아내의 이야기<br />
 아내는 1남 2녀의 집에서 둘째로 태어 났습니다. 자신의 말로는 매일 손해만 보고 자라왔다는 것입니다. 집사람은 저에<br />
게 말하는 것은 아버지가 언니는 첫째라고 용돈을 40원주고 남동생은 아들이라고 40원주고 나는 30원 밖에 주지 않았다<br />
고 하며 지금도 아버지가 차별했다고 생각한다고 여러번 3.4회) 한 말을 또 하곤 해습니다. 아마 나에게 말했던 것이 기<br />
억이 나지 않은 모양입니다. 장인어른은 하사관으로 군을 복무하셨는데 적은 월급에 집안의 생활은 장모님께서 계를 하<br />
는 등으로 꾸러가셨답니다. 장인 어른은 자식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 했고 매일 퇴근 때면 두손에 과자를 하루도 빠지지 <br />
않고 사가지고 오셨답니다. 문제는 할머니에 대한 장인어른의 효성입니다. 맏이이신 장인어른은 집안일보다 할머니댁일에 <br />
더 많은 신경을 서셨습니다. 아내는 이러한 장인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족이 죽어면 가만이 있고 할머<br />
니나 삼촌내가 힘들면 새벽에라고 뛰어나가시는 분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런 과거사에서 형성된 아내의 성격은 자존심이 <br />
강하고 시기심이 매우 강했습니다. 이러한 성격은 할머니의 성격을 닮은 시어머니(저희 어머니)를 실허하고 저희보다 경<br />
제적으로 넉넉한 저의 누나를 시기하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저희집 일이라면 독한 목소리로 거부반응을 면저 <br />
일어켰습니다.<br />
<br />
 결혼 이야기<br />
저는 직업군은으로 5년을 복무한 뒤 늦은 나이에 다시 지방대학교에 재입학하였습니다. 군생활 중 기독신앙을 가지게 되<br />
어 주일학교를 3년을 맡아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습니다. 재대후에도 착실히 교회에 출석하면서 저는 학원을 경영할 꿈<br />
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의 배우자에 대해서도 군시절부터 기도해왔고 학원을 같이 할 마음이 있으면서 영어를 전<br />
공한 사람이였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의 꿈을 아시는 목사님의 사모님께서 저를 잘 모셨는지 <br />
저보다 1살 연상인 아내를 소개 시켜 주어습니다. 아내는 겨울 방학을 이용해서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와 1달을 지냈습니<br />
다. 저는 그당시 나이 30세에 지방대 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이였습니다. 저는 사모님의 말씀을 신임하기에 집사람의 신앙<br />
을 의심하지 않았고 더욱이 영어를 정공하였으며 무엇보다 아무 장래가 보장되지 않은 지방대학교 학부생인 저에게 관심<br />
을 보이는 아내에게 호감이 갔습니다.(저는 20대 초에 짝사랑의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인지 짝사랑 이후 그 만큼의 강<br />
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여인은 이 새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재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조금<br />
씩 조금씩 익어가는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놓치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집사람과 강재로 관계를 가졌습니다. 집사<br />
람은 남자를 모르는 너무도 순수한 사람이였습니다. 그런 집사람이 점점 더 좋아 졌습니다. 아내는 저의 욕심으로 소중한 <br />
영혼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이때의 일을 후회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저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습<br />
니다. 그리고 아내를 지켜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아내에게 지우지 못할 과거를 남겨준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br />
면서 아내에게서 이상한 증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순결을 가져간 나에게서 너무나 애착적인 반응을 가지는 <br />
것이였습니다. 전화가 늦거나 조금 시간이 늦어면 톨아지곤 했습니다. 그리고 언성을 높여 싸우는 일이 자자졌습니다. 그<br />
당시 저는 서울에 있는 ㄱ대 교육대학원에 진학할 목적으로 공부를하고 있었고 졸업 논문을 2개를 서야했었는데 나를 보<br />
러 서울에서 대구까지 내려온 자신에게 더 많이 신경을 서주지 않고 자신을 보러 와 주지 않는 나에게 사나우리 많큼 강<br />
한 언행을 보였습니다. 아내의 성격은 맺고 끊는 것이 분명했으며 완벽을 추구했습니다. 길을 니나가다 돼지고기 같은 냄<br />
세에 과민하게 반응하며 역겨워했으며 대구의 어떤 음식도 입에 대지 못했고 저는 집사람의 음식에 심할 정도로 신경을 <br />
써야했습니다. 그 때 집사람이 먹을 수 있었던 곳은 부폐음식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고기류가 아닌 빵과 사라다 종류와 <br />
치즈 그리고 커피(하루 5잔)였습니다.<br />
 아내는 다른 것은 다 참아도 여자 관계는 못 참는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별 생각이 없었습니다. 여자가 없었기 때문입니<br />
다. 그런데 어느날 교회에서 평소 잘알고 지내던 같은 성을 가진의 일가 누님에게 예배를 마치고 잘가라고 악수를 한적<br />
이 있습니다. 그 모습을 집사람이 보고는 심각할 정도로 애민한 반응을 버였습니다. 아무 여자에나 손을 내밀어서 손을 <br />
잡는다고 저는 변명을 했지만 이해하려하지 않았습니다. 집사람은 이때부터 저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나의 여<br />
성문제를 이유로 결혼을 못하겠다고 했고 저는 저의 행동에 대한 강한 죄책감과 책임감으로 포기하지 않고 잘할 수 있다<br />
는 생각으로 서울을 3,4 차례 올라오면서 아내를 안심 시켰고 결혼 했습니다. <br />
 그러나 결혼은 처음부터 삐격이였습니다. 아내는 결혼하는 그날에도 화를 내었고 신혼 여행지에서 우리는 크게 사웠습<br />
니다. 이유는 내가 같이온 다른 여자 여행객의 허벅지를 음흉하게 처다 본다는 것이였습니다. 선그라서를 끼면 나몰래 여<br />
자들을 처더 볼려고 낀다는 것이였습니다. 침실에서 저는 손톱자국에 할키고와 아이힐에 찍혔습니다. <br />
 서울에 추운 겨울날 우리는 모금자리를 꾸며습니다. 아내는 애정에도 없던 박사과정을 들어가게 되고 저도 석사과정에<br />
들어가서 우리는 학생부부가 되었습니다. 집은 전새금을 저희 아버지께서 마른 해주셨는데 생활비가 문제 였습니다. 제가 <br />
파트로 학원에서 조금의 수입이 있었지만 초보라 몇 달을 쉬기도해서 많은 보탬은 되지 않는 액수였습니다. 아내의 과외 <br />
수입으로 꾸려가는 삶림이였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의부증은 계속되었습니다. 학원에서 근무하고 전화를 조금 늦게한다거<br />
나 30분 정도 늦게 귀가하면 앙칼지게 따져 묻고 저의 몸은 손톱자국이 나곤 했습니다. 이상한 것은 다른 여자와 같지 <br />
않게 욕설과 손발과 기물을 이용한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그리고 집사람이 살아온 문화와 제가 살아온 문화는 큰 차이가 <br />
있었습니다. 문화적 차이 하나하나에 부티쳤습니다. 어느 날 학원 강의가 바빠 전화 연락(이것도 문화의 차이라 할 수 있<br />
습니다.)을 못하고 30분 늦게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는 살기가 등등하였습니다. 제가 아내를 피하여 옆방으로 피하여 문<br />
을 잡궜었는데 아내는 망지로 그 문을 부수었습니다. 정말 이런 여자는 처음 봤습니다. 이렇게 힘들 때 저의 버릇이 기름<br />
을 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기역 때문에 욕설과 폭력은 제일 싫어하고 혐오합니다. 그래서인지 아내가 그렇게 저를 조<br />
여 올수록 저는 아내 몰래 인터넷에서 포르노에 심취했습니다. 그런 어느날 아내가 우연히 내가 포르노를 본 것을 내가 <br />
알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반응은 상식이상이였습니다. 순수한 아내 아니 청결 결백한 아내는 더럽다를 수차례 외치면서 <br />
칼을 들고 달려들었고 자신의 분노에 못이겨서 숨이 넘어가 기절하여 119구급대를 부르기 까지 했습니다. -또한 번은 추<br />
운 겨울 밤에 칼을 들고 10동이나 되는 아파트를 몇 바뀌나 나를 찹기위해 돈일도 있습니다. 한번하면 끝장을 내고야 마<br />
는 성격이기 때문에  - - -. 그날이후 나는 절대로 보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3번이나 어기게되었고 저자신도 이제<br />
는 인터넷에서 포르노를 보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킬 자신이 없습니다. 아내의 불신과 성격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입에는 <br />
담지못할 욕설과 폭력은 심해졌습니다. 한번 화가 나면 사생결단을 내려고 달려드는 아내의 폭력에 나자신을 방어하기위<br />
해 피해도보고 때려도 보았지만 모두 소용이 없었습니다. 내몸에는 손톱자국과 이빨자국이 그 사람몸에는 멍국(때리는 <br />
손목을 잡기만해도  자리에 멍이듭니다)만 늘어갔습니다. <br />
 화장실에 불을 꺼지 않는 것부터 빨래를 하거나 겉지 않는 것 청소를 해놓지 않는 것 밭은 해놓지 않거나 늦게 일하고 <br />
돌아왔는데 밥먹으라고 소리를 하지 않은 것 심지어는 심하게 숨소리를 내면서 숨을 쉬는 것도 짜증을 내고 소리칩니다. <br />
집에서 하는 일없이 뭐하고 있는 냐고요! 제가 군 생활을 5년했지만 군대보다 더하다는 느낌이 듬니다. 아내는 항상 자신<br />
을 이해하고 따뜻하게 사랑해주는 (아마도 제의 생각에는 어려을 때 사랑을 받지 목하고 자랐기 때문인 듯합니다.) 남편<br />
을 요구합니다. 저도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농촌과 도시 가부장적 풍토의 집안 등의 문화적적 차이를 이해해줄 것 이야<br />
기하며 노력하지만 10가지 중에 4가지 정도 밖에 못하는 것같습니다. <br />
 그러던 어느날 저의 어머니께서 아버지에게 욕설과 폭행을 당하시고 서울 누님집으로 오셨습니다. 그당시 집사람은 신<br />
경이 애민해져 있었는데 아들집에서 하루 쉬어가시라고 제가 청하고 아내에게 전화를 했는 데 차마 어머님이 올라 오신 <br />
이유를 말하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께서 이야기 하시기를 꺼려하셨기 때문에 더 그랬습니다. 저희 집에 도착했을 때 아내<br />
는 날까로와저 있었습니다. (사실 어머니는 아내의 첫인상을 좋지 않게 보셨습니다. 성질이 지것지것한 아버지와 비슷하<br />
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나 제가 좋다니 결혼을 허락해주셨지요. 실제로 저희 아버지와 아내는 비슷한 곳이 아주 많습니<br />
다.제가 싫어하는 점들이 너무 만이 닮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태도에 제자 좀 싫은 반응을 보이니까 똑 폭발하는 것입니<br />
다. 옛날영화에 포악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구박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께서 그날밤에 마루에서 주무시는데 <br />
이부자리 하나 내주지 않았고(제가 내어주려고하는데 큰 소리로 막았죠!) 어머니는 그렇게 마루에서 주무시고 다음날 그<br />
래도 아들집니라고 청소도하시고 빨래도 히시는데 새탁기 돌아가는 소리에 뛰어나와 짜증나는 큰소리를 내며 아무거나 <br />
함부로 돌리면 안되요하는 것입니다. 결국 제가 소리를 쳤고 아내는 그 성질이나와서 어머니는 쫒겨났지요. 그리고 그일<br />
로 인해서 나는 말을 하지 않는 불많을 표했고 결국 아내는 부엌칼을 또 들었고 화장실로 피신가있던 나는 그래 죽자하<br />
면 나왔고 칼등으로 머리를 수차례 찍히였습니다.    <br />
 그날 이후 저는 저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직 석사과정을 다 마치지 못하고 아내에게 언처사는 <br />
처지,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불효, 무엇보다 아내의 성격을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저의 어머님에 대한 아내<br />
의 언행은 참을 수 없습니다. 아내 역시 믿지 못할 행동을 보여준 저 때문에 마음 고생만 하고 있는 피해자로 생각됩니<br />
다.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싸움으로 산 새월들 그 좋지 못한 어린 시절의 기억들을 생각하면 우리 아들에게 성격이 맏지 <br />
않는 부모의 힘겨운 삶이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습니다. 이제 아내는 강력하게 이혼을 요구해오고 있습니다. 저 또한 제가 <br />
험오하는 욕설화 폭력을 행사하는 아내를 견디기 힘듭니다.  혹 저와 아내는 변할 수 잇을 까요? 이제 이 결혼 생활을 정리 할까 합니다.<br />
선생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br />
<br />
 
[이 게시물은 사티어님에 의해 2011-04-27 13:57:07 공개상담(이전)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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